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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바스에서의 주말

슬럼프가 온 거 같았다. 한 주가 너무 길어 힘들었는데, 다행히도 금요일 아침 나는 떠날 계획이었다.

 

기차로 한 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바스는 모두의 말대로 영국 마을의 매력을 가득 안고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슬럼프를 이겨 볼 작정이었다. 시간이 없어 제대로 여행 준비를 하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쁠 건 없었다. 스케줄이 빡빡한 여행 대신 느슨한 주말여행이 더 필요했으니까.

 

기차역에서 가까운 호텔을 잡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이제 나름 여행 노하우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식욕이 바닥인 상태에다 평소 점심과 너무 다른 푸짐함에 조금 부담스러움을 느꼈지만, 잘 먹어야 무엇이든 이겨낸다는 마음으로 그릇을 싹 비웠다. 레스토랑을 나와서는 커피숍을 찾아가 바깥 테이블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는데, 제인 오스틴이 살던 시대에도 여행지로 유명했다더니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와 같은 기차로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갑자기 피곤이 밀려왔다.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억지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돼. 나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호텔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책을 폈다. 낮잠을 자 볼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잠이 안 와 책을 읽다 창밖을 내다보기를 반복. 겨우 잠이 들었다 깨어나보니 삼 십분 밖에 지나질 않았다. 나는 여름의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를 그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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