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 꽃 시장에 가려거든, 편한 옷을 입고, 편한 신발을 신고, 현금을 넉넉히 가져가며, 꽃을 사는 건 맨 나중으로 미뤄야 한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첼시 꽃 시장 가보기를 위해 사전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었다.
뉴욕에 살면서 첼시 꽃 시장에 가보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난 늘 준비가 안됐다 느꼈다. 꽃 시장 구경가는데 무슨 준비가 필요한지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 낭만적이고, 설레고, 한편으로는 사치스러운 일을 하기엔 분명 어떠한 준비가 필요했다. 마음의 준비, 여유, 그런 거 말이다. 서른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야 난 숨을 고르고 있었고, 그럴 여유가 있었고, 그제서야 마음을 먹고 오래 기다렸던 나들이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살아있는 꽃과 식물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대단했다. 왠지 모를 행복감과 새로운 긍정의 기운이 나를 가득 채우는 것만 같았다. 사전조사 하면서 읽었던 대로 나는 몇 군대의 꽃 집을 돌아보며 가격을 보고, 꽃을 비교해 보았다. 또 장미를 전문으로 파는 도매상에 가서 수많은 종류의 장미를 보며 즐거웠다.
그날 나는 갈색 종이로 싼 꽃 다발을 가득 안고 집에 돌아왔다.
그날 이후 몇 번 꽃이 필요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의 첫 경험이 굉장히 좋았다는 것과, 더 좋고 많은 꽃을 싼 가격에 살수 있다는 이유로 난 시간을 들여 첼시 꽃 시장을 찾아갔다. 나의 새로운 취미와 좋은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마음으로 친구들에게도 자주 말해주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의 나들이 후의 일이었던가. 그날은 아네모네를 꼭 사와 야지 하는 마음으로 몇 군대의 가게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문득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좀 어두웠던 꽃집, 화분이 가득했던 꽃집 입구가 말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식구가 세 들어 살던 집 주인이 꽃집을 했었다. 꽃집 앞에서 꽃집 언니랑 찍었던 사진이, 그곳을 놀이터 삼아 보냈던 시간이 생각났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시간이 말이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 했던 건 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