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 제일 좋았다. 비 오는 날 거기에서 내다보는 창 밖 풍경은 대단했고, 하루 종일 턱을 괴고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푸른 나뭇잎들이 비를 온통 뒤집어쓰고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춤추는 그 풍경은 정말이지 굉장했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아무도 가게 오지 않았고, 손님이 오지 않으니 가게는 조용했다. 가끔씩 울리는 전화벨이 그 고요를 깨뜨리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없었다면 조금은 눈치가 보였을 수도 있으니 괜찮았다. 그리고 전화를 받으면 어김없이 배달 주문이었다.
피자 주문이 들어오면 마리오는 피자 반죽을 꺼내 피자 만들기를 시작했다.
나는 매번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피자 만드는 일이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언가로 변하는 것.
둥근 모양의 피자 반죽을 꺼내서 도마 위에 올려놓고 꾹꾹 눌러준다. 반죽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또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공놀이를 하듯 반복하고, 밀가루 반죽이 왠 만큼 늘어나면 반죽을 공중으로 던졌다 받았다, 또 던졌다 받았다. 그러면 순식간에 반죽은 넓고 얇아졌다.
그리고 국자로 토마토소스를 떠서 피자 반죽 위에 올린 뒤, 국자 밑으로 소스를 고르게 펴준다. 그 위에 치즈가 얹어지고, 다른 토핑들이 올라가면 허옇던 밀가루는 점점 화려하게 변하곤 했다.
그렇게 준비된 피자가 오븐에 넣어지는 순간, 설레는 순간이었다.
마리오라는 이름을 가지고 피자를 만드는 마리오는 이태리 사람은 아니었다. 마리오는 열여덟 살 때 루마니아에서 혼자 미국에 왔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 혼자서 이곳에 왜 왔는지, 얼마나 겁이 났었는지, 그 어린 나이에 세상에 혼자 던져진 기분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혹시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그에게는 어려운 것일까 조심스러웠던 것도 같다.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 미국에 와서 그가 처음으로 일 자리를 잡았던 곳이 피자 집이었다고 했다. 접시 닦기부터 시작해서 배운 게 피자 만드는 일이었으니 그에게 이 일이 어떤 의미 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 여름 나는 마리오 곁에서 일을 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 두 사람이 아직까지 기억난다.
하루는 어느 대가족이 점심을 먹으러 가게에 왔는데, 그 가족의 제일 어른이었던 노인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었다. 나는 그가 쓰고 있던 모자를 보고 그 사실을 알았고, 그에게 내가 한국인이라 말을 했었다. 그때 그 노인이 나를 보던 눈빛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눈빛을 뭐라고 설명할까. 그 눈에는 깊은 슬픔이 있었고 애정이 있었다. 그의 두 눈이 내 심장을 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내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으며 자꾸 고맙다 했다.
또 다른 손님은 토요일 오후면 늘 오곤 했는데, 동네 사람이 아닌 게 확실했지만 무슨 볼 일이 있는지 토요일 두 시가 지나면 가게에 나타나곤 했다. 그녀는 마리오가 제일 자신 있게 만드는 그랜마 피자 한 조각을 달라고 말하고, 돈을 낼 때면 비싸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늘.
난 그녀의 산만한 머리칼에, 매주 변하지 않는 그녀의 불만에, 뒤돌아 몰래 웃곤 했다.
그렇게 하루 장사가 끝나면 뒷정리를 하고 청소를 했다. 마리오는 그날 장사가 어땠는지에 따라 기분이 좋거나 아님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거나 했다. 또 그는 하루 일당을 주면서 그날 장사하고 남은 피자를 마음껏 가져가라고 했는데 그건 그가 매일 지키는 원칙이었다. 아무리 아까워도 아침에 새로 만든 피자만 을 손님에게 대접하는 건. 나는 피자 박스에 피자를 마음껏 담아서 집에 갔고, 집에 가면 동생이 내가 가져오는 피자를 기다리느라 늦게까지 잠을 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