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멈춘 듯 한 가을날이었다. 몇 일째 그 무겁고 힘겨운 기분을 어쩔지 몰라 헤매고 있었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아 책상에 앉아 캘린더를 열어 보았다.
언제 메모해 놓았는지 fno 라고 적어 놓은 게 눈에 띄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때도 그랬던 거 같다. 바닥인 상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 같은 무기력. 그럼에도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같이 fno 행사에 가겠다고 했던 약속 때문에 나는 밖으로 나갔었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고 다 귀찮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저녁의 공기, 장미 한 송이를 건네주며 웃어주던 누군가의 미소, 한적한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평화. 그러다 벨 아미 라는 작은 카페를 찾았던 거. 그곳의 분위기가 좋아 한참을 있다 집에 왔던 일. 어제 일처럼 그날 있었던 일들이 또렷이 기억났다.
귀찮다는 마음이 조금씩 걷어지는 듯했다..
저녁 여섯 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쇼윈도 장식은 한창이었고 행사 때문에 5번가는 평소보다도 더 북적 였다. 성탄이 가까웠을 때나 볼 수 있는 화려함이 거리를 채웠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그 흥분과 소란 속에 섞여 있던 나도 조금은 들떠 있었던 거 같다.
그렇지만 얼마 못 가 난 그 소란 속을 빠져나오려고 북쪽으로 몇 블록 걸어 올라가 매디슨 에비뉴로 방향을 바꾸었다.
몇 블록 사이의 차이는 꽤나 컷 다.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를 걷는 동안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 듯했다.. 그리고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려앉기 전의 하늘은 시리게도 파랬고, 그 아름다움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만 같았다. 조금 더 걸어 벨 아미가 있는 거리에 도착했고 그곳에서는 아늑한 불빛이 세어 나왔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테이블에 가방을 올려놓고 코코아 한잔을 부탁했다.
Bel ami
30 E 68th Street
New York, NY 10065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와 헤어지는 일 (0) | 2018.06.10 |
---|---|
이스탄불 해변에서 행복했을 너를 부러워했다 (0) | 2018.06.09 |
너의 흔적 (0) | 2018.06.05 |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0) | 2018.06.03 |
세렌디피디 (0) | 2018.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