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런이랑 만날 때 면 사람의 인연이라는 건 신기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필 그날 발레를 보러 갔고, 하필 그 자리 티켓을 샀고, 하필 대화로 이어지는 일이 벌어졌고, 하필 우리는 같은 회사에 다녔다.
또 사람을 좋아하는 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나는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나보다 한참 선배인 걸 알면서도 나는 그녀의 날카로움에 가끔씩 놀란다.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어떡해 그녀는 내 상황을 알까?
관심과 연륜의 결합일까.
런던으로 가기 전에 꽃시장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가끔 내가 사다 줬던 꽃들이 28가 꽃시장에서 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곳은 행복한 곳이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떠나기 전 목요일 아침 그녀를 첼시 꽃시장으로 안내했다. 오랜 세월 뉴욕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게 너무 후회된다고 했다.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으니...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던 탓일 것이다. 5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일을 했고, 자식들을 키웠고, 퇴직할 나이가 이미 지났는데 아직도 바쁘게 일하고 있으니까.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꽃집에 들어섰는데, 그곳에는 파란 수국이 가득했다. 캐런은 결혼식 때 자신의 부케가 파란 수국이었다고 했다.
세상에나.... 그때도 세련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무슨 꽃을 좋아하시니?"
"흰 장미요."
"그래, 그럼 엄마를 위해 흰 장미도 사가자."
"나중에 혼자 여기 오게 되면 널 생각하겠지..." 회사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그녀는 말했다.
나는 파란 수국을 볼 때면 늘 캐런을 생각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