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할머니 집에 다녀온 이후 난 자주 할머니를 부러워했다. 그리고 또 난 자주 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맨해튼 한복판에 사는 앤 할머니는 오랜 세월 그 집에 살면서 집을 하나하나 손보았고, 그러므로 그녀의 집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특별한 구석이 많았다. 맨해튼에서는 보기 드문 큰 주방이 그랬고,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었다는 책이 빼곡히 꽂인 흰 책장이 그랬고, 경매에서 이겨서 구매했다는 벽난로가 그랬다. 그런데 그중 가장 특별하고 또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주방 옆에 있는 할머니의 다이닝 룸. 지금은 두 부부만이 그곳에 살고 있지만 글라스 하우스인 다이닝 룸에는 딸과 사위 그리고 할머니의 유일한 손녀딸을 언제든 맞이할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거기 앉아서는 할아버지가 가꾸는 정원을 내다볼 수 있었다.
천장까지 유리로 된 그 멋진 다이닝 룸을 본 이후 난 자주 그곳에 앉아 있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나를 적실 것 같을 테고, 눈이 오면 하얀 눈이 너무 예쁠 테고, 또 해가 반짝일 때면 그 햇빛이 나를 삼켜 버릴 것 같음을. 계절마다 그곳에 앉아 변해가는 정원을 지켜볼 수도 있겠고,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해가 길어졌음을, 혹은 짧아졌음을 알아채곤 할 그곳을 말이다. 난 그렇게 할머니가 매일같이 누리고 있는 아름다움이 분명 부러웠다.
그리고 일 년 후, 난 다시 앤 할머니 집에 가게 되었다. 그날도 그녀는 처음 내가 그녀의 집을 찾아갔던 날 그랬듯이 활짝 웃으며 문 앞에서 나를 반겼다.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난 할머니의 다이닝 룸으로 가 정원을 내다봤다. 할머니는 봄에 와 봐야 한다며, 봄이 되면 정원이 얼마나 예쁜지, 정원에 앉아 느끼는 행복이 어떤지 얘기했다.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난 겨울이어서 앙상한 가지만을 드러내고 있는 나무를 유심히 봤다. 그걸 눈치챈 그녀는 장미나무라고 내게 말했다. 연분홍 장미가 피는 나무. 아, 그래서 나를 그렇게 붙잡았구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밀려왔다.
미국에 오기 전 살던 우리 집을 묘사하라고 하면 난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장미 나무가 있는 집이었다고. 그리고 분명 난 여러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봄이 되면 정열적인 빨간 장미가 펴 만발했고, 비가 오면 장미 잎이 떨어져 우리 집 마당을 온통 덮었고, 또 겨울이 되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쓸쓸해 보이곤 했다.
난 앤 할머니의 장미 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집을 사면 정원을 가꾸고 빨간 장미 나무를 키우겠다고. 장미꽃이 펴서 장미향이 코를 찌를 때 난 그 향에 취할 것이고, 비가 올 때면 흔들리는 장미를 바라볼 것이고, 눈이 내릴 때면 앙상한 가지를 덮은 새하얀 눈을 보며 감탄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