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도 너에게 편지를 보낼 때마다 썼던 너의 집 주소를 기억해.
너의 까맣고 예쁘게 곧았던 눈썹을, 반짝이던 검은 머리칼을, 그리고 너의 따뜻함을 기억해.
해마다 새 캘린더 시월 십 육일 칸에는 여전히 ‘예진’이라고 적어 넣는 건 어쩔 수 없는 오랜 습관처럼 계속되어가고 있어.
내가 가장 사랑했던 친구인 너와의 헤어짐이 슬프기도 했지만 난 한동안 우리가 주고받았던 편지 때문에 괜찮을 수 있었어. 너와의 이별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은 슬픔이었어.
일주일에 한 번, 때로는 두 번씩 나는 너에게 편지를 써 우표를 붙이고, 빨간 우체통 앞까지 뛰어가 네가 빨리 편지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어.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편지함을 확인했고,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그 시간이었다는 걸 너는 알까. 너도 그랬을까. 편지함에 너의 편지가 있는 날이면 기분 좋은 날이었고, 며칠 소식이 뜸 하면 난 초조하게 편지함을 열어 보곤 했어. 그리고 넌 그 많은 편지들을 배달해 준 우체부 아저씨에게 감사하다는 메모까지 남기는 그런 아이였어.
너와의 편지가 끊기고 나는 전화를 몇 번 걸어봤을까. 몇 통의 편지를 더 보냈을까.
너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다 네가 더 이상 나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 그때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듯이.
난 아직도 누군가가 건네주는 손 편지를 받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두근거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을 좋아하기에 충분하다는 마음이 들어. 편지봉투를 열어 편지를 펴 볼 때 여전히 나는 설레고 행복해. 오래전 너와 내가 나누었던 의식이 이렇게 아직까지도 나를 붙들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