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6-9/7/16
메인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다섯 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날은 흐렸고, 나는 오랜 이동시간 때문에 지쳐있었다. 뉴욕에서 보스턴까지 기차로 네 시간, 또 보스턴에서 포트랜드까지 버스로 두 시간. 그렇게 포트랜드까지 가는 동안 나는 가져간 소설 한 권을 다 읽었다.
포트랜드에서 일주일은 너무 길다고 모두들 말했지만, 슬로우 여행이 너무 간절했던 난, 일부러 시간을 넉넉히 잡았다. 오래 기다렸던 첫 홀로 여행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평소 읽는 여행 월간지와 많은 검색을 통해 꼼꼼히 여행 준비를 했다. 잊지못할 솔로 여행이 될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호텔은 좋은 곳을 가야한다는 나름대로의 여행 철학이 있는 난, 예약한 호텔이 마음에 들어 기분이 좋았다. 포트랜드 헤럴드 신문사 건물이었던 그곳은 역사를 생각해 타자기들을 벽 장식으로 걸어 놓기도 했고, 벽지는 알파벳으로 가득 채워진 걸 쓰기도 했고, 룸에는 좋은 글귀가 여기저기 씌어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 저녁시간이 되기 전까지 일주일 스케줄을 정리했다. 당장 그날 저녁은 어디서 먹을 건지도 정해야 했다. 호텔에서 거리상으로는 제일 멀리 떨어진 식당을 가기로 했다. 그래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첫날 밤이 조금 괜찮을 것 같았다.
항구로 내려가는 길, 바다 냄새가 덮쳐와 순간 놀랐다. 바다 냄새가 나는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강한 바다 냄새는 난생 처음이었다. 항구가 가까워 질수록 냄새는 더 짙어졌다. 그리고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어느정도 그 냄새에 적응했다.
식당 분위기는 근사했다. 그 집에서 자신 있어 한다는 랍스터 롤은 정말 최고였고, 항구를 내다보며 저녁을 먹던 나는 이곳으로 여행 오기를 잘했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포트랜드는 정말 작은 도시였고, 내 리스트에 적힌 거의 모든 장소에 걸어 갈 수 있었다. 공휴일이 낀 주말을 이용해 주말 여행을 온 사람들이 꽤나 있었는데, 다들 삼일 이면 충분하다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관광객들과 도시 투어 버스를 탔고, 또 배를 타기도 했다.
나의 하루 일과는 점심 먹는 것으로 시작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난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 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커피 숍을 찾아갔다. 삼 일 이면 포트랜드의 명소를 다 보고도 남는다는 말은 사실이었고, 내게 남아도는 건 시간 뿐이었다.
그런 삼 일이 지난 후, 나는 택시를 불러 포트랜드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바닷가에 가보기로 했다. 나를 데리러 온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는 배 나온 오십 대 아저씨. 그는 금방 일어난 듯한 머리를 하고 난닝구 바람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그 웃긴 상황도 포트랜드라는 작은 도시에서는 가능한 일인 거 였다.
아저씨는 나를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 줬고, 나는 두 시간 후에 다시 택시를 부르겠다고 하고는 택시에서 내렸다.
목적지가 없었던 나는 그냥 해변가를 따라 한동안 걸었다. 더이상 걸어 갈수가 없는 지점에서 나는 모래 위에 철버덕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멋진 바다풍경을 매일 보면서 살고 있는 루시 아줌마였다. 루시 아줌마는 중국 사람이었는데, 메인에는 동양 사람이 많이 없다며 나를 반가워했다. 그녀는 내게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와 함께 여행 왔는지 물었고, 혼자 여행 온 뉴욕커라는 말에 그녀는 내게 굉장히 용감하다 칭찬을 하고는 큰 소리로 누굴 불렀다. 여기 또 뉴욕커가 있어! 라고 소리쳤다.
루시 아줌마네 옆집에 사는 할머니의 딸이 가족과 뉴욕에 살고 그들은 매년 메인으로 와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또 할머니의 사위는 퀸즈 사람이었고, 그는 뉴욕에서 자랐다는 나를 반가워했다.
그들은 내게 어디 구경을 했는지, 어느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는지 물었고, 아직 가보지 않은 곳 중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말해줬다. 또 해변가에는 혼자 어떡해 왔는지 물었고, 혼자 뉴욕에서 메인 까지 왔다는 걸 자꾸 신기해했다. 택시를 타고 왔다는 말에 그들은 돌아갈 때는 데려다 주겠다며 요란을 떨었다.
나는 모래 위에 앉아서 두 집 아이들이 놀고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처음 보는 내게 아무런 낯가림없이 말을 걸어오는 아이, 수줍게 자기 소개를 하는 아이, 자기가 서핑 하는 걸 지켜보라며 서핑 보드와 시름하던 아이. 여행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렇게 선물로 가져왔다.
한동안 그렇게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는 일어섰다. 그들은 정말 나를 타운까지 데려다 주겠다면 길을 나섰다. 정말 말도 안돼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들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차를 탔다. 무사히 호텔로 돌아온 난, 이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황당한 일들을 잠시 생각하고는 깔깔 웃었다.
다음날, 나는 점심을 챙겨서 메인에서 가장 유명한 등대가 있는 바닷가에 다시 갔다. 버스 투어 때 잠시 들러 던 곳에 돌아가는 거였다.
워싱턴 대통령의 지휘아래 세워진 등대 라고 했고, 메인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히는 등대, 여러모로 유명한 곳이었고, 그곳에는 파크도 있다하니 점심을 먹고 오후를 보내기 딱 좋을 것만 같았다. 택시 회사에 전화를 하고 점심을 사서 나왔는데, 어제 만났던 아저씨가 또 나를 데리러 왔다. 어제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에 난닝구 바람. 그는 어제 바닷가에서 어떡해 돌아왔냐 인사를 했고, 자신의 하루에 대해 말했다. 새벽 4시 반에 공항에 갔어야 했는데 늦는 바람에 택시 회사 사무실에서 자신에게 삐쳤다고. 난 그의 말을 들으며 그 엉뚱함에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
난 두 세시간 후에 전화 하겠다고 말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날 날씨는 정말 맑았다. 구월이 아름답다 생각되는 모든 이유를 담은 그런 날씨였다. 파란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며, 바다 공기를 한껏 들이키며, 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보낸 그 두 시간은 최고의 휴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저씨의 택시를 타고 타운으로 돌아갔다.
뮤지엄에 가기로 한 날엔 비가 내렸다. 그날 일정이 바닷가가 아니었던 건 행운이었다. 호텔에서 이십 분 조금 넘게 걸어서 도착한 뮤지엄은 분명 내가 익숙하게 느끼는 뮤지엄은 아니었다. 뉴욕의 북적거리는 뮤지엄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말 천천히 전시된 그림들을 둘러 볼 수 있는 분위기 였고, 나는 다시 한 번 이 작은 도시의 존재를 기뻐했다.
그곳에서 나와 십분 정도를 더 걸어가 포트랜드에서 인기가 좋다는 카페를 찾아갔다. 굉장히 인기가 좋다고 한 그 카페는, 주유소 옆에 있었다. 월간지에서 읽었던 추천 대로 쿠키, 머핀, 그리고 아이스 모카를 사가지고 다시 호텔로 걸어갔다. 내내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버스를 타고 보스턴 까지 두시간, 보스턴에서 뉴욕까지 기차로 네 시간.
나는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뉴욕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중간중간 창 밖을 내다보면 어김없이 바깥 풍경은 근사했다. 정확히 어디를 지나가고 있는지 몰랐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네 시간 이후 뉴욕 펜 스테이션에 도착. 난 가방을 끌고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러 갔다. 시간은 저녁 일 곱 시 전. 나는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무표정 그리고 뭐가 급하지 모두들 뛰고 있었다. 순간 나는 놀랐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집에 다시 돌아왔는데 기분이 영 별로 였다. 현실은 단 일분의 틈도 용납하지 않은 체 그렇게 나를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