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멸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걸까. 십일월이었는데도 늦여름 같은 날씨 덕분에 우리는 테라스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이렇게 같이 나온 건 두 번째였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는 일 년도 되지 않았지만, 하루에 10시간 가까이를, 일주일에 다섯 번씩 너를 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보다 너를 알아가는 게 쉬울 테면 쉬운 일이었겠다. 나보다 나이도 많으며 경험도 많은 너는 나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는 동시에 때로는 나의 예상을 비껴가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런 너와의 관계는 늘 아슬아슬했고,, 예측할 수 없었으며, 나에게는 하나의 문제가 되기도 했다. 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으며 많은 예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너를 매일 봐야 했으니까..
큰 일 없이 조용한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네가 말을 꺼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네 얘기였다.
너는 딸 부잣집, 다섯 딸 중 넷 째라 했다. 부모님은 중국에서 이민 온 이민자였으며 힘들게 다섯 딸들을 키웠다 했다. 부모님을 실망시켰던 언니들 때문에 부담이 컷 던 사춘기, 뉴욕으로 직장을 얻어 혼자 집을 떠났던 일, 나이 든 부모님을 돌보느라 어려운 이러저러한 요즘 일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너의 개인적인 것들을 내 앞에 쏟아놓고 있었다.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체 마음만 복잡해지고 있었다. 한 번도 풍족하지 못했던 부모님 때문에 너는 돈을 잘 못쓴다고 했다. 너는 가난하지 않지만 그냥 그럴 수가 없다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너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 와서도 나는 자꾸 너의 말들이 생각났다. 너를 통해 들은 너의 부모 얘기가 나의 부모 얘기와 별 다를 게 없다는 것도 나는 그때 알았고, 나의 그 무심함과 차가움이 역겨웠다.
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너를 토닥여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황스러웠다.
삶이 치열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저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도 나는 너를 통해 다시 확인했으며 너의 어려움을, 너의 연약함을 내 앞에 털어놓은 네가 어쩌면 그저 이해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너로 인해 힘들었던 것도,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 일수도 있다는 거, 그렇게 될 수 있으니, 그랬을 때 그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도 그 마음에 함께 담겨있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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