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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뉴욕의 가장 화려한 거리

그 아침을 기억해. 오랫동안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그 아침을.

 

비가 많이 내렸고 어둠이 내려앉은 아침이었어. 비 때문에 날이 쌀쌀했고 내 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빨랐어. 그 시간 5번가는5 조용할 시간이었고, 그래서였는지 덜덜 떨면서 빠르게 걷던 내게 그 사람의 모습은 선명히 다가왔어. 낡고 헤진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그 티파니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그 사람의 모습이. 추위에, 굶주림에 지쳐서 움직이지도 못하겠는지 동상처럼 가만히, 아무런 방패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키가 크고 말쑥한 슈트 차림을 한 젊은 금발 머리 남자가 거기 쭈그리고 앉아있는 그 사람에게 돈을 쥐여주고는 바라처럼 지나갔고, 나는 멍하니 서서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어.

 

 

 

한 여름엔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가지고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해. 가끔 늦은 오후에 센트럴파크로 들어가는 입구에 보면 북 세일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책을 몇 권 골라 볼 수도 있어. 언젠가는 읽으리라 생각하며 톨스토이의 단편을 한 권 사기도 했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를 따라가 보면 길거리 공연이 한창이고, 그 흥에 내 어깨는 들썩들썩 하기도 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뉴욕의 가장 화려한 거리에서 넋 놓고 서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밀려 정신을 차리기도, 쇼 윈도우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고 머리를 쓱 넘기기도.

그런데 이렇게 많고도 많은 즐거운 기억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 아침의 슬픔을 기억하고, 그 아침 이후 뉴욕의 가장 화려한 거리는 단 한 번도 같은 의미 일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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