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끝에서 매디슨 에비뉴 까지는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걸어 매디슨에 들어서면 VQ에 들러 젤라토를 사 가지고 프릭 도서관 앞 까지 걸어가 도서관 계단에 앉아 젤라토를 먹었다.
그 시간은 세상 나 혼자 인 듯한 고요함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고요가 슬프거나 외로운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아는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으며, 나에겐 작은 위로의 시간이기도 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전부였던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위로와 희망 같을 걸 느꼈던 거 같다.
매일 그런 의식은 계속되었는데, 왜 그랬는지 묻는다면 나는 확실한 대답은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고 밖에는.
그해 여름 유난히 맑았던 하늘 때문 일수도. 혹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막막함 때문 일수도.
한참을 도서관 계단에 앉아있다 하늘이 변하는 게 느껴질 때면 다시 길을 나섰다.
거기에서 센트럴 파크 웨스트 까지는 십 오분 남짓 가야 했는데,
난 그 길이 좋았다. 터널을 통과하고 나왔을 때 덮치는 환한 빛이 마음에 들었다.
센트럴 파크 웨스트에 도착하면 그때 시간이 몇 시 인지에 따라 지금은 없어진 서점에서 한 시간 정도를 보내기도 했고,
아님 혼자서 영화를 보곤 했다. 서점에서는 읽고 싶은 책과 갖고 싶은 책 제목을 쭉 적어서 수첩에 넣어두곤 했고,
돈이 생기면 책을 한 권씩 샀다. 그리고 나면 늘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혼자 영화 보는 걸 좋아했는데, 혼자 보는 영화가 좋았던 건 물론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거 외에도 아무 방해 없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 영화가 끝난 뒤에도 천천히 영화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 어김없이 캄캄한 밤이었고 나는 그 느낌을 좋아했던 것도 같다.
여름밤의 선명함과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신비로운 기운.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그런 날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