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의 일이었다. 런던에서 한 달을 조금 넘게 산적이 있는데, 클래스 두 과목을 들으면서 여름 한 때를 런던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고, 그때 그러지 못했다면 그런 기회가 다시 찾아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았던 것도 같다.
그때 런던에 같이 가게 된 학교 친구들은 서른 명이 조금 넘었는데, 첫날에는 어색함에 서성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잘 지내야 하는 사이였기에 서로에게 친절했고, 누구도 그 어색함이 오래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호텔방의 정돈 미를 갖춘 꽤 널찍한 아파트에서 네 명의 여학생들과 같이 지내게 됐는데, 그중에는 코골이가 심해 굳이 거실에서 잠을 자겠다고 하는 바람에 분란을 일으킨 아이도 있었으며, 파리를 보기 위해 열다섯 살 때부터 나이를 속이고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아이도 있었다.
처음으로 하는 낯선 사람들과의 생활이었고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 걱정만큼 런던에서의 생활이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첫 여행이었고 결코 짧지 않은 여행이었으니 말이다.
한 달이라는 정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가장 단순하며 얼마만큼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여행 책자에 나오는 명소, 거리, 카페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보기’로 시작했다.
어떤 날에는 수업이 끝나면 내셔널 갤러리에서 오후를 보내고, 언덕 위에 있는 젤라토 가게를 찾아가는 게 전부였다. 런던의 초여름 날씨를 마음껏 즐기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그날의 모든 것에 감사하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그런 날 말이다. 또 어떤 날에는 하루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놓고 지쳐서 걸을 수 없을 만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런던의 많은 얼굴들을 보는 날이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아무것도 못하겠다며 누워있다 친구들이 하는 저녁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그때 수업 듣는 건 뒷전이었다는 걸 인정한다. 수업이 끝나면 그날은 뭘 할지, 주말에는 뭘 할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으니까.
런던에서의 많고도 많은 기억 중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실에서의 일이었다. 드라마 수업을 듣던 교실은 드라마 수업에 적합한 모습이었는데, 무용, 발레 그런 수업을 하는 곳이어서 천장이 무지 높았고 스카이 라잇 덕분에 더 근사 하기도 했다.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면 정말이지 비를 홀딱 맞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는데, 가끔 나는 아무도 없는 교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렇게 누워서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으면 진정제를 받는 느낌이었고, 그곳이 런던이었던 만큼 나는 자주 그렇게 그 강렬하고도 섬세했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런던 생활 중에는 두 번의 주말여행이 있기도 했다.
파리 주말여행은 모두가 기다렸던, 런던에 가기 전부터 계획된 일이었고, 런던에서의 한 달보다 파리에서의 주말을 기다린 아이들도 우리 중에는 분명 있었다. 새벽 기차를 타고 출발한 우리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역에서 나와 처음으로 파리의 공기를 맡았을 때, 그 기분을 어떡해 설명할까.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달콤한 공기를 맡아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파리 이후에 나는 어느 도시에 가든지 쉼 호흡을 크게 한번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어디에서도 그때의 그 달콤함을 다시 맡을 수 없었고, 나는 늘 언젠가 다시 돌아갈 파리를 생각하며 그때 그 달콤했던 공기가 진짜일까 궁금해하고 있다.
두 번째 주말여행은 암스테르담이었는데, 새벽 네 시 비행기를 타고 가느라 (대학생들 답게 무모한) 암스테르담에 도착하고서도 한나절 동안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헤맸다.
배를 타고 운하를 돌아보는 투어 중에도 졸아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내려 결국은 호텔로 돌아가 낮잠을 잤다. 오후가 지나서야 피곤이 풀렸고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갔다.
그제야 암스테르담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고, 우리는 자정이 지나도록 돌아다녔다.
그리고 우리가 호텔에 돌아갔을 때, 호텔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두운 표정을 한 호텔 직원이 우리에게 방이 몇 호 인지 물었다. 불안은 순식간이 덮쳐왔다. 그녀는 우리 방이 도둑에게 털렸다는 벼락 맞을 소리를 하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하는데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다행히 우리 방 커튼이 열려있었고, 도둑이 일을 벌이던 중, 반대편 복도에서 그걸 본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말을 했고 그 엄마는 급히 로비에 사실을 알렸다고. 내일 아침 경찰서에 가서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하면 잃어버린 물건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며 멍하니 서있는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하며 그 기막힌 소식을 전해왔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정말 암스테르담의 어느 경찰서에서 도둑 맡은 물건들을 찾으려고 몇 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다. 야속하게도 날씨는 너무나 눈부셨다.
암스테르담 여행이 끝나고 런던으로 돌아갔을 때는 집에 돌아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사실 많이 아쉬웠었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컷 지만, 돌아간다는 기쁨이 작지 않았지만, 마음이 그랬다. 그 여름은 정말 꿈만 같았으니까. 살면서 한 번쯤은 또 그런 시간이 다시 있지 않을까, 나는 늘 기대하고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