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된 꽃 집이라고 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너에게 가져갈 꽃을 나는 60년 된 우리가 헤어져 있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나는 그 사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아무 의미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흰 백합꽃을 달라고 했고, 아줌마는 흰 백합에 다른 꽃을 조금씩 섞어 포장해 주었다.
아주 오랜만이었지만 나는 어제 다녀간 것처럼 너의 집을 쉽게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니 너는 오래 문 앞에서 기다렸는지 초인종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넌 너 다운 방식으로 나를 끌어안았고, 내가 들고 간 꽃다발을 보고는 너 다운 방식으로 크게 감동했다.
소란스러운 인사가 끝날 무렵, 너의 딸아이가 내 앞에 나타나 인사를 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물었더니 아이는 안다고 했다. 어떡해? 그리 물었더니 내 이름을 기억한다 했다. 곧이곧대로 믿을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이 기분 나쁠 리는 없었다.
너는 꽃병에 물을 채우고, 꽃을 꽂고는 주방으로 옮겨갔다. 너는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고, 그런 널 보며 정말 엄마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기분이 참 이상했다. 낯설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할 게 없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너는 나를 위해 점심을 준비했다며 파스타를 그릇에 담으며 맛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조바심을 냈다. 그리고는 빵을 토스트기에서 꺼내 파스타 그릇과 함께 내 앞에 올려놓았다. 그제야 너는 내 옆에 앉았고, 엄마처럼 내가 먹는 걸 지켜보았다.
내가 그릇을 비우자 너는 기뻐했고 커피를 내리겠다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커피를 좋아할 거라 생각해 좋은 커피를 사다 놓았다고 너는 뿌듯해하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를 위해 네가 많은 걸 준비했다는 게 생각지 못한 일이어서 그랬는지 나는 감동하고 있었다.
당근 케이크를 한 조각 썰어 접시에 올려놓는 너를, 우유를 데워 커피잔에 조심히 따르는 너를 나는 지켜보았다. 넌 그걸 내게 가져다주었고 나는 너의 아이가 된듯한 기분이었다.
다시 내 옆자리에 앉은 너는 오랜 시간 동안 내게 하고 싶었을 말을 꺼냈다.
“그때 나만 아니었으면 네게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너무 미안했고 죄책감 때문에 힘들었어.
나 때문에 너한테 그런 일이 생긴 거니까… 기억나지? 저 가운데 방이 내 방이었던 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혼자 방 안에 앉아있던 어느 날 난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느님을 욕 했어. 나를 차라리 죽게 하지 왜 살게 하고 이런 고통을 주느냐고.”
너의 고백에 나는 목구멍이 탁 막히는 걸 느꼈다. 너의 절망은 나의 절망 이기도 했으며 너의 물음은 나의 물음 이기도 했으니까. 살아있다는 게 저주스럽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고통이 어떤 것이었는지, 상처 난 살 갓에서 반창고를 떼어내는 기분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너의 집에 왔던 건 너의 네 번째 수술 후였다. 너는 계속 구토를 했고, 너보다 회복이 빨랐던 나는 그걸 치웠고, 너는 아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나는 그런 널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신해줄 수 없는 고통이 얼마나 버거운지 난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했지만 너는 나에게만은 그걸 허락했다. 나는 너의 상처를 싸고 있는 모든 걸 잘라 버리고 새로 약을 발라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그건 내가 너에게 해준 마지막 일이었다.
너는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겨우 걸어서 이제 정상적인 삶을 찾는가 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떠났어. 그리고 난 몇 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고. 그러다 딸아이를 가졌어.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설교를 들었고 그때 딸아이 이름을 지었어. 믿음이라고.”
네 옆에 있지 않았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네가 견뎌야 했던 시간들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너의 외로움이 어떤 거였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때 난 너를 원망하고 있었던 걸까.
십 년이 지나서야 나는 너에게 괜찮다, 미안해하지 말라 진심으로 말할 수 있었다.
아직도 나는 왜 우리가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꼭 그랬어야 했을까 난 아직도 그렇게 묻고 있으니까. 그저 나는 고통을 통해서 만이 우리는 성장하다는 그 말을 생각하고, 그 일이 우리에게는 피할 수 없었던, 필요했던 일이라 믿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