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Daydream

가끔 그때 생각을 한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듣던 아침 여덟 시 반 수업을. 어쩌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을지도 모르는 그 시간을.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에도, 엄청난 눈이 내리던 날에도, 당신은 변함없이 여행가방을 끌고 강의실에 나타났다. 당신은 어째서 우산도 쓰지 않는 건지 비를 맞아 머리와 옷이 젖은 채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당신을 볼 때면 마음이 좀 그랬다. 그렇게 측은해 보일 수가 없었다.

평소 바바리코트를 입고 여행가방을 끌고 강의실에 들어오는 당신을 볼 때면 참 희한한 교수님이라는 생각에 자꾸 입이 실룩거리고 웃음이 났다. 나는 여행가방에서 책을 하나하나 꺼내며 수업 준비를 하는 당신을 빤히 바라보며 얌전히 당신의 수업을 기다리곤 했다.

 

당신은 엄격했고, 숙제를 많이 내주었고, 또 많은 걸 요구했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가끔 투정과 불만이 있었지만 나는 당신이 좋았고, 당신의 수업은 내가 유일하게 기다리는 수업이었다.

그리고 나는 당신만큼 재미있는 교수님은 없으리라 장담하기도 했다.

당신의 목소리는 귓속말처럼 작았고 웃음소리는 희한했다. 당신의 웃음소리보다 더 희한한 웃음소리는 아직까지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스물이 갓 넘어 그리스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던 당신은 그때 지중해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웠는지 우리에게 얘기해주곤 했다. 일 달러만 있으면 근사한 지중해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그때 당신은 주로 땅을 파는 일은 했다고 말해 우리를 웃게 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해주던 당신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퍼지곤 했다.

묘한 매력을 지녔었을 젊은 당신에게 반했던 보라색 양말을 신은 사내에 대해서 당신을 이렇게 말했었다. “그 사람은 그 보라색 양말이 꽤나 유혹적이라 생각했나 봐.”

그 말에 우리 모두 크게 웃었고, 난 상상이 되지 않는 당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궁금해했다.

 

당신이 가르친 수업을 들은 이후 나는 고전 학문을 부전공으로 선택했고, 그랬기 때문에 나는 당신의 다른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도 전의 일들을, 그 일들이 일어났던 날짜를 외우는 건 내게는 이상하게도 쉬웠고, 당신은 그것을 일찍이 눈치챈 듯했다.. 어느 날 당신은 내게 대학원에 가서 더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글쎄요…”

내 대답이 시원치 않자 당신이 말했다.

그래 이런 공부는 별로 현실적이지 않지. 그래도 잘하니까 한번 생각은 해보라는 거야. 우리 부모님은 그리 현실적인 분들이 아니 셔서 내가 고고학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래, 멋진 생각이로구나, 그렇게 말씀하셨거든.”

 

당신이 그런 말을 내게 한 이후, 나는 가끔씩 당신이 말한 일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곤 했다. 언제나 나의 속물근성이 승리하곤 했지만 말이다.

 

그러는 동안 당신은 메트로 폴리탄 뮤지엄에서 수업을 몇 번 하기도 했고, 당신이 내준 과제를 하러 나는 처음으로 뉴욕 공립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가기도 했다.

도서관의 비밀스럽고 진지한 기운을 느끼며 나는 데스크에 앉아 일을 했다. 그때 묘하게 밀려왔던 기쁨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결국 나는 그 현실적이지 못한 길을 가지 않았지만, 지금도 가끔은 그때의 기억만으로도 마음에 작은 행복이 피어나곤 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0년 된 꽃집  (0) 2018.07.20
런던 이야기  (0) 2018.07.19
미네타 태번  (0) 2018.07.11
다시 우리가 마주 앉았을 때 하고 싶은 말  (0) 2018.07.08
끌림  (0) 2018.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