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시간이 넘는 기차 여행을 하려 했던 건 기차 여행에 대한 내 마음, 내 취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굳이 이유를 대자면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싸기 때문에 그러기로 마음먹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런 고생이 두렵지 않았던 나이였던 것도 한몫했겠다..
나는 그 길고도 긴 기차 여행을 별 말이 없어도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친구와 함께 하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떠난 첫 여행이었고,, 친구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너를 보러 거기까지 혼자 가지는 않았을 거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 동안 잠을 잤다. 잠에서 깨면 간식을 사다 먹고, 얘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창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그러다 누가 먼저라고 할 수도 없이 다시 잠에 들었다.
그렇게 열 시간이 지났고 우리는 저녁 일 곱 시가 넘어서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아주 먼 곳에 며칠은 걸려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샤워를 하고 찬 물 한 컵을 마시는 일.
늦은 시간이 아니었는데 터미널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고, 낯선 곳에서 너를 기다리는 그 시간은 묘하게 불안하고 길게 느껴졌다.
너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는 생각에 공중전화를 찾으려 했는데, 그래 요즘 세상에 공중전화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얼마 후 저만치서 걸어오는 너의 모습이 보였고, 우리는 벤치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챙겨 들고 너를 향해 걸어갔다.
너는 어느새 청년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 사 년 만이었다.
몬트리올의 첫인상에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내내 나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불어를 쓰는 도시여서 였겠지만 분명 그곳의 분위기는 유럽 같았고, 골목골목 근사 했고, 젊은이들은 아름다웠다.
그날 밤의 맑고 선명했던 모든 아름다움은 참으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새벽이 되도록 그 작은 도시를 구경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야경, 거기에서 느꼈던 바람의 온도,
나는 눈을 감고 그 모든 걸 오래도록 기억하리라 다짐했다.
오랜만인 여행의 흥분이 슬슬 가라앉았고 졸음이 밀려왔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너는 산책을 하자고 했다.
오랜만에 보는 너에게 싫다고 하는 게 좀 그래 그러기로 했다.
달빛이 유난히 밝은 새벽이었다. 살면서 몇 번 보지 못한 새벽 달이었다.
새벽 공기는 찼지만 머리가 시원히 씻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건 분명 좋은 느낌이었다.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자꾸 머뭇거렸고 나는 네가 그냥 아무 말 없었으면,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지만
나는 끝까지 모른척했다. 그게 널 더 불편하게, 서운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 어색함, 불편함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창문으로 밀려 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더 이상 눈을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렸다. 일요일 아침이었고 우리가 떠나는 날이었다.
떠날 준비를 하는 내내 너에게서 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 난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웃으면서 서로를 볼 수 있기를, 꼭 그러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