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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당신의 얼굴

아마 그때였을 거다. 내가 우리 사이를 다시 생각하게 된 건.

플로리다 연수를 다녀온 당신이 내게 하얀 조개껍질로 만든 목걸이를 사다 주었다.

선물을 내미는 당신의 얼굴을 빤히 봤던 건, 그게 뜻 밖이었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특별한 선물을 나에게만 했던 이유를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나를 아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신은 그런 걸 티 내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내가 당신 곁에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표현도 괜찮다 당신은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말썽만 피우는 학생들도 당신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가 될 정도로 당신은 엄한 선생님이었지만 나는 알았다

그 딱딱한 껍질 속의 당신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많았다. 그걸 뭐라고 할까. 느낌. 직감.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늘 궁금했지만 물어볼 용기도

당신의 대답을 들을 용기도 그때 나에게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 대한 당신의 애정은 내가 알아차리기 훨씬 전부터였다. 

당신의 딸들과 내가 알고 지내게 했던 것도, 당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에 나를 초대했던 것도. 그리고 당신은 내게 말했었다

나는 두 번씩이나 사랑 따라 결혼했지만 너는 부자랑 결혼했으면 좋겠어.”

농담이었지만 농담이 아니었던 그 말도 내가 편히 잘 살았으면 하는 당신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걸 이제야 난 이해하고 있다.

 

 

내가 당신을 떠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고, 나도 삶이 내게 던지는 많은 일들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있었고 문득 그때 생각이, 당신 생각이 났다

나는 그날 저녁 당신에게 전화를 했고 수화기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날은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여름날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당신은 많이 지쳐 보였고 얼굴에는 그 지침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젊었던 당신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진 듯했고 당신의 지친 얼굴을 보는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똑똑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천장을 올려다보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로마의 거리를 상상하게 하는 뮤럴, 화덕 피자 냄새, 사방에서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

그 모든 게 내 마음을 건드렸다. 당신도 그 모든 것으로 인해 조금은 위로받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여전히 안 먹는 음식이 많았고, 여전히 짧은 금발 머리였고, 나에게는 한없이 자상했다.

밥값을 내겠다 우기는 나를 불편하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당신의 눈에 나는 여전히 열여섯의 아이라는 걸 

나는 그 눈빛에서 읽었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지나도 아마 그럴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헤어지기 전 당신은 차 뒷좌석에서 쇼핑백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난 아무 말 못 하고 물끄러미 그걸 보며 만지작거렸다

당신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늘 이렇게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보다 컷 던 거 같다. 아마도 계속 그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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